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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 에스디사람

종교, 신앙 코너

부르심과 반응!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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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노예 상태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불평한 세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 오직 믿음으로 순종한 이들만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 당했을 , 고레스 왕의 칙령(기원전 538)으로 포로들은 귀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소수만이 부르심에 응답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회복 계획에 동참하여 성전을 재건했고, 이들의 명단은 에스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고(기원후 70), 유대인들은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2,000 , 1948 이스라엘은 기적적으로 재건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유대인이 참여한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한 소수의 믿음이 이끈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이스라엘을, 그리고 오늘날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사랑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르심을 받은 모든 이가 응답하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세상의 안락함에 머물며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합니다.

 

나는 어떤 반응을 하고 있나요?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분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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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HIJCC10635 2025.05.20  
사마리아인들은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니 성전 재건에 동참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지도자들은 거절했어요. 왜 거절했을까요? 그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겪으며 깊이 반성합니다. 과거에 이방 종교와 섞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아픔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는 게 너무 중요했기에 사마리아인은 "순수한 유대인"이 아니라고 거절한 거예요. 사마리아인들은 화가 나서 성전 공사를 방해하는 적이 됐어요. 배척이 더 큰 갈등을 낳은 거죠.

 

예수님 시대에도 비슷했어요.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정통이야!” 하며 사람들을 정죄하고 배척했지만, 예수님은 달랐어요. 사마리아 여인, 세리, 죄인들과 함께하시며 “하나님 나라는 모두를 품는다”고 보여주셨어요.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배경과 인종을 초월해요.

 

오늘날도 신앙의 방식이나 배경 차이로 타인을 배제하는 태도가 있을까요? 생각이 다르다고,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짜증내진 않나요? 솔직히,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데, “내가 더 낫다”는 오만함은 내려놓으면 어떨까요?


서로의 다름을 품고 형제자매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더 환히 빛날 거예요!
HIJCC10635 2025.05.21  
에스라 8장을 보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요.그는 왕에게 군대 보호를 요청하지 않기로 했죠.왜냐? 이미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지키신다”고 왕에게 말했거든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후, 그 믿음과 모순되는 요청인 것 같아서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오늘날 우리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기도는 하지만 걱정에 사로잡혀요, 하나님의 공급은 믿지만 물질에 집착해요.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하지 않아요.

에스라 9장에서는 백성이 이방인과 결혼해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다는 것을 알게 돼요. 에스라는 이 사실을 알고 너무 부끄럽고 마음이 아팠죠.백성의 죄가 하나님의 거룩함에 못 미쳤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에스라는 지도자로서 백성의 죄를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며 회개했어요.부끄러움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우리의 책임을 보여줘요.
부끄러움은 외적인 것과 내면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어요.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영적각성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HIJCC10635 2025.05.23  
주님 안에서 기뻐함으로 힘을 공급받는 날이 되길 축복합니다.

유다 귀환자들이 성전 재건을 할 때, 이방인들을 배제하며 순수한 예배를 추구했어요. 이에 따라 산발랏, 도비야, 게셈 같은 이들이 유대인에게 적대감을 품었죠.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이들은 온갖 방해를 시도했어요.

오노 평지로 유인해 암살하려 했고, 봉하지 않은 편지로 반역 누명을 씌우려 했으며, 스마야를 매수해 성전으로 유인하거나, 귀족들과 내통해 분열을 꾀했죠.

하지만 느헤미야는 지혜롭게 대응했어요!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한다”며 단호히 거절했어요. 모함에는 “그런 일 없다”며 기도로 맞섰어요. 스마야의 배신도 분별하고, 내통에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이건 “악한 데는 미련하고 선한 데는 지혜로워라”는 말씀의 본보기예요!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악한 방해엔 분별력을, 선한 일에는 지혜와 인내를 발휘해야 해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멋진 열매를 기대해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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